[시진핑 新시대 지방지도자①] 4대 직할시 당서기·시장, '시자쥔' 장악

  • 정혜인 기자
  • 입력 : 2018-03-08 05:00
  • 수정 : 2018-03-1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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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정치협상회의)’가 3일 베이징에서 막을 올렸다. 2주일 넘게 이어지는 올해 양회는 국가주석, 총리에서부터 각 중앙행정부처 수장도 선출하는 중요한 자리다. 이로써 '시진핑 집권 2기’ 지도부 진용이 다 짜여지면 명실상부한 '시진핑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양회를 앞두고 중국은 이미 31개 성(省)·직할시·자치구 수장 인선도 대체적으로 마무리했다. 각 지방정부 수장은 중국 방방곡곡에서 비즈니스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키맨'이라 할 수 있다. '시진핑 시대' 중국 각 지역을 이끌 지도자를 6회에 걸쳐 집중 해부해본다.
 

[그래픽=임이슬 기자]


중국 4대 직할시(베이징·상하이·충칭·톈진) 당서기와 시장 자리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친위세력인 ‘시자쥔(習家軍)’으로 장악됐다. 이로써 중국 정치·경제 중심지인 4대 직할시를 필두로 시 주석의 권력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차이치 베이징 당서기. [사진=바이두]

◆차이치 베이징 당서기
차이치(蔡奇) 베이징(北京) 당서기는 푸젠(福建)성과 저장(浙江)성 등에서 함께한 시 주석과의 인연으로 ‘시진핑의 남자’, 시자쥔으로 불린다.

저장성 중앙조직부 상무부성장이던 그는 시 주석에 의해 2014년 국가안전위원회 판공실 부주임으로 임명되면서 베이징에 입성했다.

이후 베이징 대리시장 겸 부시장에 이어 시장으로 취임한 그는 베이징 지역 군부대 영리사업 중단 업무를 관할하는 영도소조 조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 5월에는 시장으로 취임한 지 4개월 만에 베이징시 당서기로 등극하며 초고속 승진 가도를 달렸다.

차이 당서기는 저장성 상무위원회 위원 당시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웨이보(微博)’ 계정을 개설하고 일반인과 소통해 인민친화적 간부로 부상하기도 했다.

당내에서는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강한 개혁·혁신 정신, 그리고 시 주석과의 인연으로 현 정부의 주요 인사로 꼽히고 있다.

그는 ‘2020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자격으로 한정(韓正)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함께 지난달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최근 차이 당서기가 중국공산당 중앙통일전선부(통전부) 부장으로 자리를 이동해 대만 통일공작 업무를 총지휘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시진핑 정부가 2050년까지 대만 통일 해결 등 완전한 조국통일을 강조함에 따라 통전부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점쳐져, 이런 인선 전망은 차이 당서기가 명실상부한 ‘시진핑의 남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천지닝 베이징 시장. [사진=바이두]

◆천지닝 베이징 시장
천지닝(陳吉寧) 베이징시 시장 하면 ‘최연소’와 ‘환경전문가’ 호칭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1964년생인 천 시장은 2012년 48세의 나이로 중국 칭화대(清華大) 최연소 총장 자리에 올랐다. 3년 뒤인 2015년에는 환경보호부장으로 임명돼 중국공산당 창당 이후 최연소 국무원 부장으로 등극했다.

천 시장은 지린(吉林)성 리수(梨樹) 출신으로 칭화대 토목환경공학과 환경공학을 전공했고, 천시(陳希) 당 중앙조직부 상무부 부부장, 후허핑(胡和平) 산시(山西)성 성장과 함께 ‘칭화대 3인방’으로 불린다.

특히 천시 부부장은 천 시장의 후견인으로 시 주석과 화학공학과 동기이자 기숙사 룸메이트로서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천 시장은 대리시장 재임 당시 베이징시 대기오염 완화, 스모그 해소 대책을 추진하는 등 환경문제와 관련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둬 환경전문가로 부상했다.

앞서 시 위원회는 천지닝을 베이징시 대리시장으로 임명하고, 그에 대해 “정치적 입장이 확고하고, 시야가 넓어 개혁·혁신적이며 책임감 또한 강하다. 또 성실하고 신중한 인물이며 성격이 솔직 담백하며 스스로에게 비교적 엄격한 잣대를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경보호부장으로 취임한 이후 중국의 복잡한 환경 문제와 경제 발전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해 환경 보호 분야의 체제 개혁을 심화시켰다”고 평했다.

 

리창 상하이 당서기. [사진=바이두]

◆리창 상하이 당서기
리창(李強) 상하이(上海) 당서기는 시진핑 주석이 저장성 당서기 재직 무렵 비서직을 맡았던 인물로, 시진핑의 저장 인맥 ‘즈장신쥔(之江新軍)’ 중 한 명이다.

리창이 상하이 당서기로 선발된 것은 특정 지역에서 고위직을 지낸 간부가 타지역 지도부로 발령받은 사례로, 시진핑 인적 네트워크인 ‘시자쥔’의 형성 배경이기도 하다.

그는 저장성 뤼안(瑞安)의 한 설비공장에서 노동자로 근무하다 1983년 현(縣) 위원회 간부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저장성, 장쑤(江蘇)성 등 장난(江南·양쯔강 이남 지역) 지역에서 30여년간 활동하며 현지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또 저장성 공산주의청년단 간부 경력이 있어 다양한 계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을 갖췄다는 평가도 받는다.

장쑤성 당서기 시절에는 창장(長江) 삼각주 북단의 난퉁(南通)시를 수차례 시찰하고, 난퉁시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다양한 부문에서 상하이시와 협력을 추진했다. 또 난퉁을 상하이로 통하는 입구로 만들겠다고 천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상하이에 대한 그의 이해도와 친밀도가 현지 간부만큼 높아 위화감 없이 상하이시 당서기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잉융 상하이 시장. [사진=바이두]

◆잉융 상하이 시장
지난해 1월 상하이시 시장으로 취임한 잉융(應勇) 시장은 차이치 베이징시 당서기와 함께 중국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에 진입해 처음으로 중앙위원으로 선출됐다.

시진핑 주석과는 저장성과 상하이시에서 함께 일하며 친분을 쌓았다. 시 주석이 상하이 당서기로 이동할 당시 잉융 시장을 데리고 가기도 했다.

잉 시장은 중국 법조계에 37년간 몸담아 ‘법조 베테랑’으로 불리기도 한다.

중국 정법대학 졸업 후 저장성 파출소 공안에서 공안청 부청장, 감찰청장, 고등인민법원장 등의 요직을 역임했고, 상하이시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고등인민법원장, 당 조직부장 등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저장성 공안청 부청장 재임 당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여러 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특히 당시 저장성 최대 암흑가 범죄사건을 처리해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2008년 상하이 고등인민법원 원장 때에는 상하이 법원 내 법관과 변호사 사이 ‘분리장벽(隔離墻)제도’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분리장벽제도는 상하이 법조계의 주요 간부와 법관, 배우자, 자녀가 관할 구역 내 변호사가 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해당 제도를 통해 시진핑 집권 1기의 주요 과제인 ‘부정부패 척결’에 도움을 주며 시 주석의 조력자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법조계는 “사법의 공정성을 증진시키려는 과감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천민얼 충칭 당서기. [사진=바이두]

◆천민얼 충칭 당서기
천민얼(陳敏爾) 충칭(重慶)시 당서기는 시진핑의 저장인맥 중 한 명이다. 시 주석이 저장성 당서기일 때 선전부장을 맡아 당 통치이념 면에서 복심으로 불린다.

특히 천 당서기는 4년간 시진핑 이름으로 게재된 칼럼의 ‘즈장신위(之江新語)’ 초고를 써 시진핑 통치철학의 밑그림을 함께 그린 인물로 주목을 받았다.

천 당서기는 시진핑 집권 이후 4년 동안 구이저우(貴州)성 부성장에서 성장, 당서기로 고속 승진을 거쳐 4대 직할시인 충칭시 당서기 자리에 오르며 ‘포스트 시진핑’으로 부상했다.

이를 근거로 전문가들은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천민얼을 시진핑 후계자로 점쳤다.

결과적으로 천 당서기는 상무위원에서 배제됐다. 하지만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의 시작점이 충칭시라는 점에서 천민얼의 영향력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시진핑의 최측근 천민얼의 충칭시 당서기 임명은 시 주석이 지방 지도부 교체로 자신의 정치적 힘을 과시하는 것”이라며 “천 당서기는 저장성에서 시 주석 밑에서 일하며 신임을 얻었고, 그 후광을 입고 4대 직할시로 진출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탕량즈 충칭 시장. [사진=바이두]

◆탕량즈 충칭 시장
탕량즈(唐良智) 충칭시 시장은 후베이(湖北)성과 쓰촨(四川)성에서 오랫동안 지방 책임자를 지낸 학구파 관료다.

1982년 7월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탕 시장은 후베이성 우한(武漢)시 둥후신기술개발구 기획 담당을 시작으로 우한시 시장까지 역임했다.

이후 2014년 쓰촨성 청두시 부서기, 대리시장을 거쳐 시장, 당서기 자리에 오른 뒤 지난해 4월 충칭시 부서기에서 시장으로 승진했다.

탕 시장은 후베이성의 수도 우한시 시장과 청두(成都)시 당서기 시절 자신만의 뚜렷한 집권 성향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탕 시장과 함께 근무한 주요 관료들은 “탕량즈는 주변에 비교적 실무적인 인상을 줬고, 자신만의 체계적인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했다”고 그를 평가한다.

우한시 시장 재임 시절 주요 건설 개발 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 ‘미스터 디그 디그(Mr. Dig Dig)’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술과 음식을 좋아하는 지한파(知韓派)로도 유명하다. 우한시 시장 때 현지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인터뷰를 갖고 한국 기업들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해 우한시를 제2의 칭다오(青島)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리훙중 톈진 당서기. [사진=바이두]

◆리훙중 톈진 당서기
리훙중(李鴻忠) 톈진(天津)시 당서기는 부정부패 척결 추진에 앞장서며 시진핑에 절대적인 충성을 보이는 인물이다.

리 당서기는 정치 경력으로는 장쩌민(江澤民)파로 분류된다. 하지만 장쩌민파 주요 인사들의 낙마 이후 시진핑 찬양에 적극적으로 나서 ‘배신의 아이콘’이라는 꼬리표도 붙는다.

실제로 그는 후베이성에서 보시라이(薄熙來)를 따라 ‘혁명가요 부르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다가, 보시라이가 낙마한 후에는 이를 황급히 중단했다.

2012년에는 저우융캉(周永康)을 직접 수행하며 이창(宜昌)과 우한 등지를 시찰했으나, 그가 낙마한 이후에는 시진핑 찬양에 나섰다.

후베이성 당서기 재임시기인 2010~2016년에 후베이성에서 낙막한 공직자 수는 매년 전국 최고를 기록하는 등 부정부패 척결에 앞장섰다. 2016년 1월 말에는 지방수장 중 가장 먼저 시진핑 핵심론을 제창하며 충성심을 드러냈다.

시진핑에 대한 그의 충성심 때문에 일각에선 리 당서기의 종교가 ‘시진핑교’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리 당서기는 지린대 역사학과를 졸업했지만 하버드대 연수 시절과 광둥(廣東)성 근무 당시 경제 공부에 매진해 경제 전문 ‘파워엘리트’로도 통한다.

그의 개혁 아이디어인 ‘창장중류도시군’ 전략은 2015년 ‘창장중류도시군 발전 규획’으로 국무원 승인을 받았다.

 

장궈칭 톈진 시장. [사진=바이두]

◆장궈칭 톈진 시장
​중국 군수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통하는 장궈칭(張國清)은 충칭시에 이어 톈진시까지 중국 4대 직할시 중 두 곳의 시장을 거치게 됐다.

장궈칭 시장은 천지닝 베이징시 시장, 탕량즈 충칭시 시장과 함께 '류링허우(60後·1960년대 출생자)' 세대의 선두주자로 분류된다.

그는 창춘(長春)이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칭화대에서 계량경제학과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 군수업체 중국베이팡(北方)공업공사, 중국병기공업그룹에서 근무해 중국의 국방과 경제 전문가다.

장 시장은 32세의 나이로 베이팡공업공사 부총경리가 되면서 ‘방위산업의 젊은 보안관’으로 불렸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베이팡공업공사 총경리, 병기공업그룹 당 조서기 겸 부총경리를 지낸 뒤 충칭시 부서기로 발탁됐다.

지난해 충칭시 시장으로 부임한 이후 1년 만에 톈진시 부서기로 자리를 옮겨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장 시장의 인사를 두고 차세대 후계 주자인 천민얼 충칭시 당서기를 배려한 인사이동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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